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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결혼하던 시절, 시댁과 처가는 달랐습니다. 5060이 기억하는 그때의결혼 (친정, 백년손님,장인, 장모)

by 행복메이트 2026. 9. 2.

안녕하세요. 행복메이트입니다. 🌿

요즘 가을 결혼철이 다가오면서 주말이면 결혼식장으로 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거나 이미 며느리와 사위를 맞이한 5060 세대도 많을 것입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우리가 결혼하던 시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금은 결혼을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5060 세대가 젊었던 시절에는 결혼이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집안과 또 다른 집안이 연결되는 일이었고, 특히 여성에게 결혼은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을 넘어 ‘시집의 며느리’가 되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여자에게는 ‘시집간다’, 남자에게는 ‘장가간다’고 했습니다. 말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혼 뒤 며느리가 시댁에서 해야 했던 역할과 사위가 처가에서 해야 했던 역할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지금의 기준으로 누가 옳고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 우리 5060 세대가 결혼하던 시절 시댁과 처가는 어떤 곳이었는지 한번 돌아보려고 합니다.

1. 결혼하면 남편의 집안사람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젊었던 시절에는 딸이 결혼하면 “이제 출가외인이다”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혼한 딸은 친정보다 시댁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남편의 부모를 자신의 부모처럼 모시는 것이 며느리의 도리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명절이면 시댁에 먼저 가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설이나 추석을 앞두고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집도 많았고, 제사가 있는 집이라면 며느리의 역할은 더 컸습니다. 시부모 생신과 집안 경조사까지 챙겨야 했고, 큰며느리라면 집안 대소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습니다.

시댁에 도착하면 며느리가 편하게 앉아 있기 어려웠던 집도 많았습니다. 시어머니가 부엌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가 일을 거들었고, 식사가 끝난 뒤에도 설거지와 뒷정리는 며느리들의 몫이 되곤 했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보면 낯설 수 있지만 당시에는 이런 모습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2. 친정은 그리워도 마음대로 가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결혼한 여성에게 친정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었지만 결혼 전처럼 마음 편하게 드나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명절에는 시댁의 차례와 식사, 뒷정리를 모두 마친 뒤에야 친정으로 갈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댁과 친정의 거리가 멀면 명절 당일 친정 방문을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어렵게 친정에 도착했는데도 다음 날 시댁 일정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친정어머니 역시 딸이 보고 싶으면서도 “시댁에는 말씀드리고 왔니?”라고 먼저 걱정하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부부가 서로 상의해서 이번 명절에는 시댁을 먼저 가고 다음 명절에는 처가를 먼저 가는 식으로 일정을 정하는 가정도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며느리가 “이번에는 친정부터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혼은 한 사람과 함께 사는 일이면서 동시에 그 집안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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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반면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불렸습니다

며느리에게 시댁이 어렵고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다면 사위에게 처가는 조금 다른 곳이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는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말이 아주 익숙합니다. 사위가 처가에 오면 장인과 장모가 귀한 손님을 맞듯 대접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딸이 사위와 함께 친정에 온다고 하면 장모는 평소보다 좋은 음식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마련하고, 밥상에서도 좋은 반찬을 사위 쪽으로 밀어주는 모습은 당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장인이 사위에게 술 한잔 권하며 어렵게 대화를 시작하는 모습도 익숙했습니다.

물론 사위 역시 처가가 마냥 편했던 것은 아닙니다. 장인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고 처가 식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남성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처가의 제사 음식을 준비하거나 장모의 생신상을 차리고 집안일을 거들어야 한다는 기대까지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결혼을 했지만 며느리와 사위에게 주어진 역할은 분명히 달랐습니다. 며느리는 ‘가족이 되었으니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사위는 ‘가족이 되었지만 여전히 귀한 손님’처럼 대접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 그렇다고 그 시절 남편에게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가족문화를 돌아볼 때 며느리의 어려움만 이야기하면 또 한쪽의 모습이 빠질 수 있습니다. 그 시대의 남편들에게는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이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남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여겼습니다.

직장이 힘들어도 쉽게 그만둘 수 없었고 사업이 어려워도 가족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남성들이 많았습니다. “남자가 그것도 못 견디느냐”, “가장이 흔들리면 집안이 흔들린다”는 말을 들으며 힘든 감정을 숨기는 것이 익숙했던 세대이기도 합니다.

육아와 집안일 역시 남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집안일을 돕는 남성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고, 남편 자신도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큰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당시의 남편과 아내 모두 시대가 정해놓은 역할 속에서 살았습니다. 다만 아내에게는 며느리와 아내, 엄마라는 역할이 겹쳐 있었고 남편에게는 가장이라는 책임이 강하게 주어졌다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5. 이제 우리가 시부모와 장인·장모의 자리에 섰습니다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 눈치를 보던 며느리는 어느새 며느리를 맞이하는 시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장인 앞에서 긴장하던 젊은 사위도 이제 딸이 데려온 사위를 바라보는 장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려워했던 바로 그 자리에 이제 우리가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의 결혼생활을 바라보면 우리가 살았던 방식과 많이 다릅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고, 사위가 처가에서 설거지를 하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명절마다 어느 집을 먼저 방문할 것인지 부부가 상의하고, 시댁과 처가를 똑같이 부모님의 집으로 생각하는 젊은 부부도 많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나는 며느리 때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부모님 말씀이라면 먼저 따랐는데”, “요즘 며느리와 사위는 우리 때와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며느리였을 때 힘들었던 일을 지금의 며느리도 똑같이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사위였을 때 처가가 불편했다면 지금의 사위에게는 조금 더 편안한 장인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겪었던 것을 그대로 물려주는 것보다, 우리가 힘들었던 부분을 다음 세대에서는 조금 덜어주는 것이 어쩌면 더 좋은 가족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행복메이트의 한마디 🌿

우리 5060 세대가 결혼하던 시절과 지금 자녀들이 결혼하는 시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는 당연했던 것이 지금은 당연하지 않고,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이 그때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모두 잘못됐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의 가치관 속에서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지켜왔습니다. 때로는 참고 양보해야 했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뒤로 미뤄야 했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도 부모 세대가 어떤 결혼생활을 살아왔는지 한번쯤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 세대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라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가족문화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알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새로운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제 며느리와 사위가 아니라 시부모와 장인·장모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서운함을 되풀이하기보다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갈 기회가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요즘 부모들은 흔히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면 되지”, “사위도 아들이나 마찬가지지”라고 말합니다. 듣기에는 참 따뜻한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며느리를 딸처럼 대하는 것이 좋은 관계일까요? 사위를 아들처럼 생각하면 서로 더 가까워질까요?

어쩌면 며느리는 딸이 아니고 사위도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에게 필요한 예의와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이 되었다고 모든 경계가 없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딸 같은 며느리, 아들 같은 사위’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부모의 기대와 자녀 부부가 느낄 수 있는 부담, 그리고 서로 오래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슬기로운 인생2막,
행복메이트가 함께 알아가겠습니다. 🌿